충주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고분군으로 소일부락 서쪽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충주시의 중심부에서서북쪽으로 약 5km떨어져 있으며, 탄금대를 지나 한강 서쪽 강변으로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해발 100m~130m의 봉우리를 이루고 작은 능선들이 있는 곳이다. 이 구릉지대는 북쪽으로 능선이 이어져 을궁산과 장미산성에 이르기까지 무덤 떼가 분포하며, 충주 고구려비의 남쪽으로 약 4km,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일명 중앙탑)의 서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곳이 중심이 된다. 이곳은 무지(무덤)고개의 남쪽 기슭 능머리 일대에 있는 수많은 석실 봉토분으로 이 일대의 대부분이 도굴된 상태에서 최근에 발굴조사된 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고려장터라고 전해오던 곳으로, 일제시기에도 도굴, 파괴되어 훼손이 많이 이루어졌다.
충주는 고구려 때는 국원성으로 부렸고, 6세기 중엽에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이후 이곳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여 ‘중원소경’이라 하였으니, 왕경(王京; 慶州)에 다음가는 부도(副都)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6세기 중엽 이후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1.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1980년 중원문화권 설정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고, 이후 1983년 3월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에 석실 1호분과 2호분이 발굴 조사되었고, 1990년과 1991년에 28기의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石室墳)과 고려시대의 돌곽무덤(石槨基)과 움무덤(土壙木棺基)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중심부의 작은 범위에서만 봉토를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이 76기나 되고, 반경 1,5km 이내에서 약 23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2. 형태:
고분의 형식 가운데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횡혈식 석실봉토분(橫穴式 石室封土墳)도 있다. 가장 주목되는 무덤은 1호분으로 호석(護石)을 두른 지름 16m 크기의 봉분 안에 중앙 무덤길을 가진 돌방무덤이다. 무덤방의 규모는 북벽 2.25m, 남벽 2.35m, 동벽2.75m, 서벽 2.6m이다. 높이 1.1m 까지는 다듬은 할석으로 쌓았으며, 그 위로는 중심을 향해 둥글게 좁혀 쌓은 후 마지막에 큰 돌을 얹어 무덤방 천정까지의 높이는 2m가 되었다. 남쪽 벽의 중앙에는 무덤길을 만들었다. 북쪽 벽에 잇대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너비 1.1m, 높이 0.45m의 시상(屍牀)을 만들었다. 시상은 백회로 메움질을 하고 두텁게 회를 발랐으며, 이 시상의 앞쪽에는 북벽에서 2.2m의 간격을 두고 낮게 시상을 마련한 흔적이 있다. 북쪽의 시상 끝에서 바닥을 너비 20cm, 깊이 10cm로 파고 냇자갈로 채운 배수로가 무덤길에서 동벽으로 치우쳐 이어져 호석까지 이른다. 경사를 오르며 분포된 다른 석실분들은 규모가 작아진 것들로 시상이 여럿 중복되기도 하였다. 다른 양식의 무덤은 봉분에 제사 흔적이 있는 17호분, 석실을 등고선 방향으로 배치한 16호분과 17호분, 무덤길을 서쪽으로 낸 9호분, 얇은 판석으로 천정을 덮고 무덤길을 중앙에 길게 낸 21호분이 있다. 5호분과 6호분처럼 횡구식 석실분이 동쪽 경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이밖에도 누암리 산33번지와 산36번지 일대에는 고려시기의 석곽묘와 토광묘가 분포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석곽묘의 바닥에 철을 만들 때 나온 철재(鐵滓)를 깔아놓은 것도 있어서, 이 부근이 저명한 철의 생산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발굴당시의 사진을 게시해 복사하고, 고분군을 한바퀴 돌면서 담은 모습들
3. 출토유물:
유물은 1호분에서 순금태환(純金太鐶) 귀걸이 1쌍, 금동 가는 고리 3점•원판 수식이 붙은 귀걸이 1쌍•쇠손칼 2점•네모꼴 작은 철정(鐵鋌) 12점•신라토기 여러 점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사진자료는 ohyh45 님의 블로그 자료를 인용함.
4. 현황:
2005년 3월25일 사적 제463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지정된 면적은 56,739㎡이다. 지정범위는 전체 고분군의 중심지 일부에 해당되며, 현재 주변 지역에 도굴되고 파손된 고분들이 떼를 이루어 분포하고 있어서 확대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분군의 동쪽에 소규모 공원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진입로의 확장과 전시교육 공간이 더 필요하다.
사진자료들은 ohyh45님의 블로그에서 인용된 것임.
개발초기의 모습과 2015년06월22일의 모습을 대비하였음.
5. 의의와 평가: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557년(진흥왕 18) 국원소경을 설치한 것과 558년(진흥왕 19) 왕경 6부의 귀족과 호인들을 이주시킨 사실을 실증하는 고고자료로 6세기 중엽 이후의 고분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출토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신라고배인 단각고배(短脚高杯)라 불리는 굽다리 접시와 관련된다.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최고 귀족층의 무덤은 석실에서 횡구식을 포함하여 변화되었으며, 고려 초기에는 석곽묘 또는 토광묘로 변화된 양상이다. 이와 이웃해 있는 탄금대 토성과 장미산성 등은 백제 시기의 유적이며, 충주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남하와 관련된 실증 자료이다.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삼국의 문화가 교차되면서 통일 지향의 중원 문화권으로 형성되는 핵심지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by 향토문화대전)
ohyh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한 발굴 당시와 궁륭모양으로 덮기를 하는 모습
고분군 앞의 경계지에서 본 산딸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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