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중앙탑 주변 둘러보기

아름답지만~ 2015. 1. 15. 10:13

3)중앙탑 공원(1518); 몇 번인가 멀리로만 보이는 중앙탑을 보기위해 차를 모니 공원의 규모가 커 중앙탑이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중앙탑부터 찾고 휘이 발길을 남한강변으로 돌리니 물위에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데크길을 꽤 길게 설치했다. 빠른 걸음으로 발길을 돌려 조각품들을 보고는 날이 푸근해지면 박물관 등을 보리라 하고 떠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국보 제6>

중원(中原)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칠층 석탑으로 통일신라시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이라고도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으며, 10여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중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정도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은 느낌이 강하여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복원시 6층 탑신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 목제칠합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차례 해체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창동리 오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1518); 예전의 82지방도(현 청금로)에 이정표가 있어 좌회전하니 바로 앞에 오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이 얕은 울타리 안에 있고 바로 옆에는 무형문화재 제2호인 청명주 제조장이 있다.

 

 

*중원 청명주(中原 淸明酒) <지정(등록)1993.06.04., 소재지; 충주시 중앙탑면 청금로 112-10(창동리)>

1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청명일(양력 45,6일경)에 사용키 위해 빚어진 민속주이다. 조선시대에 한강 상류의 돛단배 집결지인 충주지방 일대에 오가는 손님들이 즐겨 마시기 시작하여 옛 사대부들을 위한 손님 접대용은 물론 명절과 제삿날에 애용하던 술로 궁중에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제조한 누룩만을 사용하여 낮은 온도에서 약 100일동안 발효 숙성시켜 빚는다.

충주 청명주는 김해김씨 가문의 기록인 향전록(鄕傳錄)에 기록되어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알콜 농도가 높고 색맛이 뛰어나며, 현재 기능보유자 김영기(金榮基)씨에 의해 전승되어 지금은 그의 아들 김영섭씨가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어 4대 째 청명주를 빚고 있다.

이곳에서 청금로로 잠시 달리니 마애여래상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에 차를 주차시킨 후 길을 건너 울타리를 들어서 오르니 산마루에 집이 세채가 있고 다시 내려서는 계단(25,14,65)을 거쳐 남한강변 좌측 바위벽에 마애불상이 있다.

 

 

                            위의 앞에 보이는 다리는 우륵대교, 뒤의 다리는 탄금대교, 역사적 이름이 붙은 다리

*창동리 마애불상: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얕은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로 동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4m 정도이다.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하다 분패 전사한 신립(申砬)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창동 마애불은 바위의 박락이 있고 어깨 아래의 표현은 선각으로 부정확하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규모가 거대한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얕은 부조로 조각하고 손을 표현하지 않는 등 고려시대 지방색이 나타나는 마애불로 추정되며, 또한 강물 위에 뜬 배에서 바라보아야하는 독특한 위치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수운의 안녕을 기원하며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충주시, 문화체육관광부>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역시 배에서 보는게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내려설때는 쉬웠던 계단이 가파르게 조성되어 힘 좀 쓰고 돌아왔다. 역사기행은 가급적 옛 도로를 따라야 쉽게 많은 곳과 접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다음 행선지를 물색해 봐야 되겠다.

                                                       남한강과 탄금대가 일부 보이는 모습, 대문산의 일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