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출발하면서, 부여를 여러번 왔으면서도 찾지 않았던 궁남지와 정림사지 그 모습이 몹시 궁금했는데, 왜 그리도 유명한 곳을 연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찾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우람한 정림사지의 오층석탑을 진작 찾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이룩해 낸 찬란한 역사문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1. 다녀온 날: 2015년10월03일 토요일<개천절>
2. 찾아온 길: 29국도-(부여대교 밑 통과)-돌말교차로(우회전)-수북정교차로(우회전)-백제교 통과-군청로타리 통과
(이곳서 우회전이 좋았는데)-궁남사거리(우회전)-궁남지주차장(대형차만 주차, 소형차 우회)-서동로-
서동공원 주차장 [13시40분~14시05분; 25분간 이동]
3. 관광 이야기: 늦은 출발에 시내를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았으나, 9월26일부터 10월 4일까지 이어지는 ‘백제문화제’ 중이라 행사에 몰린 차량과 인파로 주차장을 궁남지의 서편 서동주차장에 대고 연잎밥 식당을 찾으니 길가 음식점은 모두가 연잎밥 간판을 붙이고 있었다. 사비로를 걷다가 ‘인동초’란 간판(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91-2; 041-836-0096)의 식당에서 연잎밥을 먹고 궁남지 주차장쪽에서부터 궁남지까지 구경하려 한다.
수련: 수련이라는 이름은 꽃잎이 밤에는 접어드는 습성이 있어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불려진 이름이다. 뿌리줄기가 굵고 짧으며 밑부분에서 많은 뿌리가 나온다. 잎은 난형으로 물위에뜨고 화살촉과 같이 중앙을 향해 갈라져 있다. 꽃은 6~8월에 피며 적색, 황색 등 다양하다.
물양귀비: 꽃이 양귀비를 닮았고 물에 산다해서 “물양귀비”라고 한다. 열대지역 연못이나 늪에서 퍼져 자라 는 여러 해살이 풀로 꽃은 7~9월에 노란색으로 피며, 가운데 부분은 붉은 빛을 띤다.
빅토리아연: 1801년 유럽인 식물학자 헹케에 의해 아마존강 유역을 탐사하던중 발견되었고,1836년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여 ‘빅토리아레지아(VictoriaRegia)'라고 명명하였다. 잎은 물위에 떠 있고 지름이 90~180cm로 크며, 꽃은 여름철 저녁에 물 위에서 피는데 처음에는 흰 색 또는 엷은 분홍색이지만 차츰 변하여 붉은 색이 된다.영국의 J. 팩스턴이 온실에서 생육시켜 꽃을 피우는데 성공한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아메리카의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가시연: 수련과에 속하는 일년생 수생식물로 잎과 꽃에 가시가 돋아 있다고 하여 가시연이라고 불리며, 멸종 식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식물이다. 꽃은 7~8월에 피고 밝은 자주색을 띠며 가시가 달린 꽃자 루 위에 핀다. 꽃은 낮에만 벌어져 있고 밤에는 닫히며, 때로는 낮에도 벌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메그니피센트: 개화기= 6~9월, 분포지 유럽, 아시아 특징= 중형크기의 연꽃으로 색감이 화려하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궁남지와 부여를 안내하는 홍보판 뒤로 많은 수련들이 자태를 뽐내며, 철지난 연잎들만 한여름의 풍요를 추억하게 하는 듯해 연꽃 필 계절 다시한번 궁남지를 찾아야 할 욕심을 나게하고 수련의 매력적인 모습에 다소의 위안을 찾았다.
궁남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삼국유사』에 ‘무왕 35년(서기634년),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 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연꽃이 만발한 칠월 말이면 형형색색의 천만송이 연꽃을 주제로 한 서동연꽃 축제가 열린다.
※주요관광지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제도성의 중심 성으로 평시에는 왕궁의 후원 이었으며 전쟁 시에는 최후 방어선 으로 이용돠었다. 산성 안에는 군창지•낙화암•고란사•영일루•사자루 등이 있으며, 고대 중국•일본 과 교역로 역할을 하였던 백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백제문화단지(百濟文化團地): 찬란했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 까지 총 17년간에 걸쳐 조성하였다. 백제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 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초기 궁성인 위례성, 묘제는 물론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관 등 1400년 문화대국이었던 백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림사지오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 정림사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오층석탑은 높이가 8.33m의 결코 작지 않은 탑을 탑신부에는 모서리 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 기법을 적용하여 상승감을 보여주 는 등 장중하면서 부드럽고 육중하면서 단아한 세련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백제계 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신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 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능산리 고분군(陵山里 古墳群): 부여중심지에서 논산 방향으로 2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고 있고 나성 동쪽 바깥에 위치한다. 봉긋한 원형의 봉토분 모양의 7기 고분중 동하총(東下塚)인 1호분 에는 공주 송산리 6호분과 마찬가지로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교류를 증명해 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또한 백제 왕실의 원찰로 추정되는 능산리 절터에서는 백제금 동대향로(국보 제287호)•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발견되었다.
부여관광안내; 충남 부여관광안내소 041-830-2330, 부여군청 문화과 041-830-2252
관광지 운영시간; 백제역사문화관 관람시간 09:00~18:00, 국립부여박물관 관람시간 09:00~18:00
부소산성(낙화암) 특별한 경우만 제한함, 황포돛배운행 수시운행(일몰 전까지)
서동공원 주차장에서 차를 빼 서동로에서 궁남로로 좌회전해 궁남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계백로를 따르다 바로 앞에 국립부여박물관이 보이지만 좌로 굽은 계백로에서 좌회전에 차를 막는 교통안내원이 궁남지에서 왔다니까 통과시키는데, 자리가 몇 개 있다. [이동 10여분]
백제문화제의 주무대인 정림사지박물관 앞에는 공연장을 만드느라 부산하고 더많은 인파들 속에서 오층석탑이 보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시간이 수륙대제를 거행하는 시간이라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오층석탑을 거쳐 강당지의 보호각까지 다녀서 오며 그 옛날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정림사지(定林寺址): 부여정림사지(사적제301호)는 사비도성 내에 위치하는 백제의 중심사찰이다. 백제시대의 정림사는 중문(中門),탑(塔),금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동서회랑과 동편건물 지,서편건물지,북편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규모는 동서 약62m, 남북 약 120m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된 청동기시대 문화층과 정림사 창건 이전의 백제시대 문화층, 고려시대 문화층 등이 확인되어 정림사지가 창건 이전에도 공방시설을 조성한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고 려시대에도 사찰로서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당지(金堂址): 금당지는 석탑기단에서 북쪽으로 약15m 거리에 있다. 금당지의 하층기단에 적심석이 남아 있는데 북편 7개,남편 6개,서편 4개,동편 7개,건물내부에 1개소이다. 적심석의 배치로 보아 건물은 (퇴칸을 포함) 정면 7칸,측면 6칸으로 정면 18.75m,측면 13.80m이다.
강당지(講堂址): 현재 강당지 자리에는 석불좌상의 보호각이 세워져 있다. 강당지는 석탑 중심부로부터 북쪽 으로 57.5m 거리에 있다. 건물은 정면 39.1m,측면 16.3m로 세장형 건물이다. 기존에 확인된 고려 시대의 강당(정면 31.8m,측면 17.9m)은 이보다 작게 조성되었다. 강당지의 기단은 기와를 쌓아 만 든 합장식 와적기단과 평적식 와적기단으로 구축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扶餘 定林寺址 石佛坐像) 보물 제108호,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이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 있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단정하면서도 균형 있는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석불이 있던 절은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다. 정림사는 이 절의 고려시대 이름인데 1028년에 만들어진 기와 명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 초에 절을 다시 세울 때 백제시대의 강당자리를 금당으로 삼아 이 석불을 주존불로 모셨다. 남원 만복사 대좌와 함께 11세기 고려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지정별: 국보 제9호, 소재지: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이 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석탑이다. 탑의 모서리에 세운 배흘림 기둥이나 넓은 지붕돌 등을 따로 만들어 짠 탑으로 부분 재료를 보면 목조건축의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돈된 형태나 장중하고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백제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백제탑의 시원 양식으로 이를 본 뜬 탑 이 충남지역에 많이 만들어 졌다. 1층 몸체 돌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겨 넣었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이다.
애마가 있는 곳까지 되짚어 나오며 다시한번 유적지의 가치에 대하여 음미하는 기회를 갖는다. 다음으로는 근래에 만들어졌다는 백제문화단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감사합니다.3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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