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부여여행 3. (백제문화단지)

아름답지만~ 2015. 10. 16. 15:40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신라와 소정방이 이끄는 신라와 당나라에 멸망 당하며, 홀대되고 사장된 흔적들을 근래에 이르러 소중히 여기고 발굴하여 차츰 빛을 보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고 있으며, 그 흔적들을 재현하고져 많은 노력을 해서 이것을 긴 세월(1994년부터 2010) 동안에 복원한 현장이 백제문화단지이다.

                                                        분수대에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들었고, 미륵사 9층목탑의 모형도 만들었다.

                                                                                         아래는 미륵사지의 금당 모형이다.

1. 다녀온 날: 20151003일 토요일<개천절>

2. 찾아온 길: 정림사지-계백로(국립부여박물관 앞 경유)-금성로-대왕교차로-4국도-가탑교차로(좌회전)-40국도-대향로로타리-40국도-정동교차로-625지방도(백마강교 경유)-문화단지사거리-백제문화단지 주차장 [ 1545~1605; 20분간 이동]

                                                                           백제문화단지 조감도와 사비궁, 능사, 고분군 등의 조감도

3. 관광 이야기: 백마강교를 지나며 백제보는 보이지 않고(1km이상의 거리) 중간에 차를 세울 수도 없이 지나쳐 백제문화단지가 가까위지며 갓길에 불법주차한 차들이 많았다. 많은 차 사이로 들어간 제 1주차장에서 내리니 아내가 투덜댄다. 고적지(古蹟地)를 하나라도 더 볼일이지 새로 지은 곳에서 무얼 보고 얻을 것이 있느냐고 말이다.

백제보(百濟洑)는 부여읍과 청양군 청남면에 있는 금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백제의 시장 모습과 백제의 왕과 신하들

대꾸도 하지않고 경로표를 받아 먼저 백제역사문화관으로 입장한다. 전시실은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으며 규모도 크려니와 옛 유물들을 복제하고 설명한 정성이 돋보이는 것이 우리들 선조가 힘들여 만들었던 유물들과 얼핏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다. 작은 토기부터 커다란 토기들, 생활상이나 풍경 등의 사진과 밀납인형 등 여러 모습들을 보며 지나치고, 군데군데 상영관도 있으나 그대로 지나쳐 다음 전시실로 이동을 반복했다.

                                                                             필자가 찾지 못했던 예산 사면석불과 태안마애삼존불 안내판

백제의 유적을 어느정도 보았으나 보지 못한 몇 곳들과 국보의 복제품을 보았고, 특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아무리 보아도 3D로 복제했다는 생각을 해 보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20여 분간 서둘러 돌아보고 나와 정양문으로 향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은 서울국립박물관 소장으로 국보 제 83호로 백제시대 7세기 초에 제작된 높이 93.5cm의 불상으로 머리의 삼면에 각기 산 모양의 관을 쓰고 있어 삼산관반가사유상으로도 불린다.전체 모습이 정적이며 균형 잡힌 신체 표현과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입의 정교한 표현과 손발가락의 미묘한 움직임, 풍만한 얼굴과 가녀린 눈매,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가 당대 불상의 최고 걸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일본 교토 고류지에 있는데 이 불상의 코기는 높이가 123.5cm이지만 불상의 재료가 적송으로 일본에는 없는 목재라 삼국시대 작품으로 사료된다.

                                                                          아래 위로 놓고 보면 크기와 재료만 다를 뿐 판박이 같지 않습니까?

이곳에서도 비록 무료이나 정양문(正陽門)에서 경로우대권을 다시 보여주고 들어서니 넓은 광장 앞에 사비궁(泗沘宮)의 모습이 보이며, 능사의 5층 목조탑도 겹쳐서 천정문(天政門)이 보이고 멀리 능사쪽에는 해설사를 대동한 관람객들이 설명을 진지하게 듯는 듯 보인다.

                                                                                       능사의 모형도와 천정문 들어서서 본 능사의 원경

천정전은 왕궁의 가장 중심공간에 있는 정전으로 정치는 무릇 하늘의 뜻에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외국의 사신접견이나 신년하례, 왕실의 행사의식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시에만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 말은 백제시대 중요 유적인 천정대에서 유래한 말로 재상을 뽑을 때 사용했다는 기록에서 유래했다.

                                                                                                                       천정문과 천정전

천정문(天政門)을 지나며 외줄타기 공연이 있는지 천정전(天政殿) 앞에는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천정전에는 중심이 되는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했으며 우측의 문사전(文思殿)을 지나 연영전(延英殿)을 거쳐서 현정문을 지나고 능사로 이동한다.

                                                                                                          약간 측면에서와 정면에서 본 어좌

문사전(文思殿)은 백제시대 왕궁의 동쪽 동궁전의 중심건물로 왕이 평상시 집무를 보는 곳으로, 앞쪽에 위치한 주로 문관(文官)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연영전과 구분된다.

                                                                                        왕의 집무실이었던 문사전과 신하들이 집무하던 연영전

능사(陵寺)의 정문인 대통문(大通門)을 들어서면 좌우로 금강역사상이 버티고 선 곳을 지나 5층목탑(五層木塔)을 만나 안을 들여다보니 위로는 중간이 막혀 있고, 탑 뒤에는 바로 대웅전(大雄殿)은 금당(金堂)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삼존불(三尊佛)을 백제시대 출토된 불상을 근거로 목조불상을 안치해 놓았다. 대웅전 뒤로 다소 떨어져 자효당(慈孝堂)이란 현판이 붙은 강당이 있으며, 이곳에서 고분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동궁전의 1.현정문,2.영영전,3.문사전,4.숭지문을 표시한다.

                                                                                      능사의 원경과 근경, 5층목조탑이 돋보인다.

능사는 성왕(聖王;523~554)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왕(昌王;위덕왕)이 지은 절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가 발굴되었으며,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에서 서기 567년에 건립되었음을 입증한 사찰로 창왕은 관산성(지금의 옥천지방)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능산리에서 발굴된 유적과 1:1로 이곳에 재현했고 5층목탑은 정림사지5층석탑과 익산미륵사지석탑 등을 참고하였다. 5층목탑은 그 높이가 38m에 이르는 건물로 국내최초로 백제시대 목탑을 재현하며 현대적 장비로도 복원에 많은 애로가 있었으니 1,450여 년전 전통기법으로 건축한 것은 백제의 뛰어난 공예기술과 건축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능사의 5층 목조탑 상세도와 능사의 대웅전

                                                                          백제시대 출토된 불상을 근거로 조성한 목조 삼존불과 대웅전 처마의 모습

                                                                                                 사찰 내의 강당으로 사용되던 자효당

멀리 고분공원을 향하며 대표적으로 횡혈식 석실분인 6호분을 담고 갈증으로 아이스바를 하나씩 사먹고 전망대라는 제향루 아래의 길로 생활문화마을로 들어서 주막촌 이정표를 따라가 메뉴판을 혹시 장래에 필요할지도 몰라 담아놓고 서민들 가옥을 연출한 거리를 지나며 울타리의 표주박과 탐스럽게 달린 감 밑을 지나 위례성으로 향한다.

                                                  멀리서는 이상한 장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백제 횡혈식 석실분으로 6호분

고분공원(古墳公園)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묘제를 보여주는 곳으로 사비시대 대표적 고분형태를 보여준다. 이 곳에 복원된 고분은 부여지역에서 출토된 고분을 이전 복원한 곳으로, 석실분은 사비시대 귀족계층의 무덤이며, 백제문화단지내 화걔조성부지에서 출토된 석실분 3기 등 7기가 이전 복원한 것이다.

                                                                                            백제문화단지 내의 고분군 전경과 실제의 모습

위례성은 백제가 초기에 수도로 삼았던 곳으로 조그맣게 재현시켜 놓아서 시각적인 공부가 될 수 있도록 해 본 곳으로 토성의 위로 올라보니 다소 주변이 많이 들어온다. 남문에서 동중문을 거쳐 대문 있는 곳에서 남문쪽을 향하며 마려의 집을 지나고 남문을 나와 해자에서 사육중인 철갑상어를 들여다 보고 천정문을 거쳐 애마가 기다리는 제1주차장으로 나온다.

                                                                      언젠가 단체로 방문한다면 써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안내판과 메뉴판

                                                                                                   생활문화마을에 복원한 옛 가옥들

위례성은 백제 한성기(BC 18~AD 475)의 도읍을 재현하였다.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터전을 잡은 곳으로, 미추홀에 자리잡은 비류와 통합하고 백제의 수도로 자리했으며, 지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유리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백제가 성장하는데 큰 기반이 된 곳이다.

                                                                         위례성 조감도와 고상가옥이 보이는 성내 그 시대의 주택들

                                                                              생활문화마을의 귀족주택들과 위례성 내의 망루와 주택들

                                                                 성의 외곽 목책의 모습과 개국공신 마려의 집을 재현해 놓았다.

4. 돌아오는 길: 애마로 문화단지 사거리까지 나가는 길은 신호를 몇 번이나 받는지, 길가의 불법주차가 이곳 군민들의 약싹 빠른 짓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진입한 625 지방도-라복교차로(우회전)-부여나들목-15130251400 고속도-북오산나들목-1 국도-84 지역도-안녕동 마트-서부로-(마트 들려 왔는데도 2시간10분 정도 소요)

                                                                           위례성 내의 주택과 성밖 해자에서 사육 중인 철갑상어

5. 에필로그: 백제문화단지 건축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대목장(大木匠). 단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인 단청장(丹靑匠), 기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인 번와장(翻瓦匠),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인 각자장(刻字匠)이 참여하여 최대한 발굴된 유적을 참조했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련만 몇 번 다녀 왔다고 멀리만 생각했던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건 아닐지?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이 타지역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들을 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하루였다. 시간을 갖고 박물관에서 하루를 공부한다면 더많은 백제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부여여행 모두 마침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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