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무신인 남이(南怡; 1443~1468)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조선 3대 태종(太宗)의 사위였던 구당(龜堂) 남휘(南暉)의 손자이자, 조선초기 문신이며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관의 수훈을 받은 권람(權擥; 1416~1465)의 사위로 세조3년(1457)때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무직(武職)을 역임하였다.
이시애(李施愛)의 반란 때 난을 토벌(討伐)하고 여진족(女眞族)을 정벌(征伐)한 공으로 26세(세조12)의 나이에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다. 예종(睿宗; 1450~1469)이 즉위 후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훈구세력(勳舊勢力; 주로 세조의 왕위 찬탈에 참여한 집권 정치세력을 지칭)과 남이에 대한 예종의 개인적인 편견이 겹쳐져 유자광(柳子光; 1439~1512)의 “남이가 역모를 도모한다”는 무고로 26세에 처형되었다.
그의 묘소가 남이섬이 아닌 화성시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어 서둘러 찾았으며 이에 얽힌 얘기를 정리해 본다.
1) 다녀온 날: 2016년04월13일
2) 여정길 안내: 집-송정로-정자천로(중부경찰서 경유)-일월로(우)-서부로(좌)-43국도-84•98•313지방도-77국도(우)-[수화2통,양철이(우)]-남이로-남이로151번길(좌)-[[남이장군묘역]]-되돌아-77국도-313•318지방도-301지방도
(궁평항로)-[[궁평항]]-301지방도(궁평항로;화옹방조제)-매향3리선착장-301지방도-77국도(우)-82•43국도-
서부로-일월로-정자천로-송정로-집 (주행거리 113km)
화옹방조제 끝의 매향3리 선착장과 화옹방조제
3) 소회: 네비로 확인하고 유명지니까 쉽게 찾으리라고 생각해 입구근처에 가면 이정표가 있으리란 생각으로 남양읍에서 77국도로 우회전후 초행길이라 이정표를 두리번 거리며 제법 큰 사거리(수화2통,양철이 버스정류장)에서 서투른 네비를 켜니 우회전인데 삼거리 이정표에 안내가 없어서 당황했으나 이 길이 남이로였다. 황당한 느낌을 받으며 서행하니 남이장군묘 이정표가 그제야 눈에 띈다. 좌회전해 들어가는 도로는 마을 안길 수준에 조심해 들어가 막다른 곳 쯤에서 남이장군묘소 안내판과 조그마한 석비가 초라하게 서 있고 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농촌 별장인 듯한 입구에서 차를 돌려 비좁게 차를 대는데 다른 차가 들어온다. 조그만 차를 가졌으니 비좁지만 지나갈 수 있지만 한심함을 금할 수 없었다. 많은 역사적 유적지를 돌면서 이렇게 초라한 유적지가 있을까 의문스러움과 화성시의 문화유적지 관리가 용주사와 융건릉에만 치우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남이장군 하면 쉽게 생각하는 것이 남이섬(춘천시 남산면 남이섬길 1)이구나 하는 생각, 주소는 춘천이지만 가평에서 가까운 곳이 각종 편의시설로 유명세를 탄다는 걸 아쉬워만 해야하는 것인가?
그래서 우선은 화성시에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을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다른 유적지, 적어도 덜 유명세를 타는 곳 몇 군데를 담아 본다.
박팽년 사우와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삼층석탑 이정표
김생사지와 이수일장군 묘소와 신도비 구역
사당과 묘소에서 멀리 보이는 우륵대교
하강서원과 모현정, 아래는 모현정에서 내려오다가 본 하강서원 주차구역
누암리의 주차시설과 주차구역에서 본 고분군
주차장 한켠의 화장실, 높은 곳에서 보는 고분군
청룡사지의 보각국사탑과 탑비
수룡계곡과 조덕공의병장의 묘소가 함께 있는 곳
임경업장군 묘소의 주차장과 묘소
임경업장군의 충렬사의 관리사무소와 안내도
창동리 오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과 이정표
억정사대지국사탑비와 경종대왕태실 안내판
경종대왕 태실과 내려다 보이는 주차구역
아래는 주차장에서 보이는 태실이 있는 작은 동산의 모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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