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다녀와도 단편적으로만 다녀와 탄금대공원을 한바퀴 돌리라 마음 먹고 다녀왔다.
그 기록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다녀온 날: 2016년09월21일(수요일)16시30분
퇴근에 맞춰 부리나케 달려 가 탄금대공원을 향하고 차를 주차장에 정차시킨다.(16시40분) 공원 안내도를 담고 그 옆의 탄금대사연 노래비를 거쳐 중간중간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보며 중원문화길을 따른다.
※ 탄금대사연 [작사 이병환, 작곡 백봉, 노래 주현미]
1.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실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님은 어디가고 물새만이 슬피우나
2.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진 남한강에 님 부르는 탄금아가씨
충혼탑,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과 감자꽃 노래비를 지나고 삼거리(무술경기장 계단길)를 지나 차로를 벗어난 열두대로 가는 계단길로 나아갔다.
<1994년 작품 '율일적'> 이철수 作
<1994년 작품 '명(鳴)'> 안재열 作
위: 감자꽃 노래비, 아래: 1994년 작품 '열리는 아침' 천민숙 作
| 겨울이면 위험해 폐쇄되는 무술경기장으로 열린 계단길 가는
※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 <명승 제42호>
해발 108m 정도의 야트막한 산(大門山 또는 犬門山)에 위치한 탄금대는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 금을 연주한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으나 신라 진흥왕이 가 야지역을 합병하고 사민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충주지역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추정된다.
또한 선조(宣祖) 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 장병이 탄금대 일대에 배수진을 친 후 북상하는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고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 군에 맞서 싸웠으나 분패하여 자결한 고전장(古戰場)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달천과 남한강의 합수머리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우며 특히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절경을 이룬다. 탄금정 인근에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 현충시설을 갖추고 있다.
중원문화길 (대흥사 등으로 통하는 차로 겸용)
1994년 작품 '땅' 최은경 作
1994년 작품 '하늘로'(정창춘 作)와 아래: 1994년 작품 '자연과 인간 사이'(김영란 作)
※ 충혼탑(忠魂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24-1-1, 관리자: 충주시장>
서기 1955년(을미년)11월에 대한민국 상이군경용사회 충청북도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장병 보도회(현 재향군인회)에서
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중원 지역의 장병과 경찰관, 군무원, 군노무자 2,838위의 넋을 추모하고자 충혼탑을 세웠다.
2004년 5월에 충주시에서 호국영령의 위패봉안실 을 세웠고, 그 위에 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 뒤로 호국영령의
위패가 추가되어 2,910위 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었으나(2012년12월 현재), 2014년 이중봉안 위패를 정비하여 2015년 1월
현재 1,910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이곳에서 향사(享祀)를 지낸다.
[위치: 충주시 칠금동 산1-1, 건립일시: 1955년11월(현존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됨), 휘호: 국내유 일의 우남 이승만 대통령 친필,
규모 및 구조: 화강암,높이8.5m]
신립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
탄금정에는 너댓 명의 방문객이 있었고, 열두대로 향하는 계단길로 내려서니 아주머니 두 분이 10여 미터 위 탄금정의 남편을 부른다. 사진 좀 찍어 달라고~?, 내가 찍어주마 하고 몇 방을 찍어주고 나 또한 자료를 담는다.
1994년 작품 '작품-9103'(신은숙 작)과 1994년 작품 '혼-목'(김희경)
위: 열두대로 오르는 계단길과 아래는 계단 올라 본 남한강
※ 탄금대기(彈琴臺記): 이 비석은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두께는 34cm인 화강석으로 1954년에 세워졌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교 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때부터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세력을 다투었 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신라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던 오소경 중 하나인 중원소경 이 설치되는 등 이처럼 충주는 예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충주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뛰어난 음악가 우륵, 대문장가 강수, 명필 김생 등이 배출되어 이 고장의 문 화 예술을 꽃피웠으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 때 활약했던 신립, 병자호란 때 활 약했던 임경업 등이 배출된 고장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이같은 과거의 영예로움을 이어 받아 문화의 원천이 되고 인재가 모이는 고장이 되 려면 지역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올바른 전통이 있어야만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석의 글은 최남선(崔南善)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것이다.
탄금대기의 석비와 해설문
탄금대기의 앞면과 뒷면
2부로 이어서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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