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광명시를 찾아서 (광명동굴, 오리이원익 유적지)-3

아름답지만~ 2016. 11. 1. 08:31

오리 이원익의 영우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1, 소재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1084

영우(影宇)란 영정을 모신 건물을 말한다. 이곳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재상인 오리 이원익(1547~1634)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선조 13(1580) 이전의 이원익의 영정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은 비가 새는 2칸 초가 대신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이원익의 집터 위에 숙종 19(1693)에 건립된 사당이다. 이원익은 당시 백성들이 오리정승이라 부를 정도로 소탈하고 청렴한 생활을 한 서민적인 정승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 평양성을 다시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선조광해군인조 등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으로 기단과 초석은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건물의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든 건물로 보인다. 또한 다른 사당과 달리 영정을 모시는 감실(龕室) 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빠르게 돌아보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 오리서원으로 향하니 곧 도착한다. 주차시키고 서원 으로 향하는데 큰길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를 뒷차가 들이받는 소리가 굉음을 낸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근무자가 식사를 하다가 반긴다. ‘이원익 선생의 묘소를 볼 수 없느 냐하고 물으니 개인의 묘소라 안된다고 한다. 허무하게 돌아가는가 하며 나오다 보니 문 이 열려 있다. 아내는 들어가지 않고 나만 부리나케 들어서니 농토가 있고 삼거리, 헷갈려 이쪽 저쪽을 헤매다 찾아드는 길목은 관리가 되지 않아선지 벌레가 많은 밤들이 통행을 저 해한다. 중간에 이원례 부부의 묘비가 있으나 봉분은 없고 조금 더 간곳에는 많은 봉분이 있어 다소 헷갈렸다. 마치 논산에서 김장생 묘소 일원을 보는 듯 했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 아 몇군데만 보고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다.


                                                            위는 오리서원과 입구 홍보판, 아래는 오리 이원익선생 신도비


                                                                      아래,위: 이원례 부부 합장묘비


                                                      선생의 묘소 가는 길의 석비와 오리이원익 선생의 묘소


                                    이원익 묘소에서 본 완창군의 묘소, 아래는 여러 묘들이 산재하고 시내 아파트 숲


5) 후기: 광명시의 도지정 문화재급의 유적은 거의 대부분이 오리 이원익선생과 그의 자손들이 연관된 유적들이다. 짧은 시간에 선생의 위대한 업적들을 훓터보면 얼마나 알겠을까 만은 그래도 안본 것 보다는 낳지 않을까. 요즘으로 치면 뭐가 모자라도 단단히 모자란 듯한 가난이 선생의 주특기인 듯하니 더더욱 생각이 나는데, 그래도 가족의 묘와 가옥들은 후손들의 출세가 오리대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건 아닐는지, 인걸이 나타나는 집안은 후손들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이 되는 출세가도가 있어서이지 않았었을까 생각해 보며, 작금의 고위직들의 행태가 무수한 비리와 축재로 얼룩짐은 고위직과 가족들이 오리서원에서 12일쯤의 청렴정신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교육과 실행이 필요할 것같다.

                                                               종가댁 내부 살림채의 모습을 담았다.



                                      무슨 꽃인지 수많은 나비가 덤벼서 담았으나 역부족, 아래는 선생의 묘소 뒤로 아파트숲

                                      졸필의 국내여행기를 마침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