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산성으로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부른다. 어릴적 내가 살던 고장과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소풍철 한번쯤
초등학교 시절 투덜거리며 걸어갔다가 온 흐미한 기억이 있으나 그 당시는
세마대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 흔히 세마대로 부르기도 했었다.
역사적으로는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며, 비교적 독자적으로 솟아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요긴했지만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까지 조선 시대 이전의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그 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아지는 주인장 가방에서 편안하게 산책길 나서서 시원한 공기나 마셔라~
서문 들어가는 계단이 아무리 가파르기로서니 네 발로 올라서야~?
조선 시대 임진왜란(壬辰倭亂) 중 권율(權慄) 장군의 기만술에 속은 왜군은 이곳의
실패가 경기도 일원에서 조선군에게 참패를 당했다해서, 기만술에 사용되었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마대(洗馬臺/洗馬坮)라는 누각을 지어서 기념하고 있는 곳이다.
몇 번의 답사는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지나치기 일수였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건강
다지기에만 열중했으나, 이제 걸음도 느려졌고 또다른 취미인 역사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갖고져 선조들의 발자취에 대한 공부를 하고자 한다.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겠으나 두 번의 사진을 토대로 정리했으며, 삼형제가 늘푸른아파트 근처에서 출발해
양산봉과 독산성 서문을 거쳐 동문으로 나와 원점회귀의 과정도 정리했다.
위는 양산봉 팔각정 누각, 아래는 양산봉에서 산림욕장으로 향하는 중간의 옛 가파른 길을 정리한 데크길이다.
1. 독성산성(禿城山城) [선조 25년(1592) 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 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세마대)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 위로
하얀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 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성 내부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성곽과 세마대지의 최소 면적만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 보존•관리하고
있어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성 내부까지 모두를 포함한
종합유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8년 7월12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추가 지정하였다.
독성산성은 주출입구로 서문과 남문이 이용되었으며, 북문과 동문이 있어 성문은 4개,
치(雉) 8개, 우물 1개, 수로 1개가 남아 있다. 정조 14년(1790) 독산성 행차시 서문을
통했으며, 이후 순조 4년(1804년) 현륭원 경관 보호로 폐쇠되었다가 근세에 복원하였다.]
조망은 멀리는 수원시 고색동, 가까이는 좌편에안녕동 미지엔아파트, 가운데 노란 건물은
새로 생긴 안용초등학교, 앞의 산은 용주사를 품고 있는 화산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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