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배우기

역사의 현장 “독산성(禿山城)”-2

아름답지만~ 2018. 10. 27. 20:36

2. 독성산성 전투 [독성산성 전투(禿城山城 戰鬪)는 경기도 수원부(현 오산시)의

독성산성에서 권율이 벌인 전투로 이치전투₁ 이후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이 전투 이후 경기도 지역의 일본군들을 궤멸시켰다.

임진왜란 초기에 벌어진 용인전투₂에서 5만 명의 남도근왕군(南道勤王軍)이

궤멸당한 후 용인전투 참전 장수 중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던 권율은 이치전투

(梨峙戰鬪)에서 승리한 후 임진년 말경에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다가

독성산성으로 들어갔다. 당시 한양에는 6만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권율이

한양의 후방인 독산성에 주둔하고 있으면 왜군의 보급 추진과 연락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2만 명의 군사로 오산,관천,용인 등지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독성산성의 식수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된 왜군은 지구전을

펼치려 했으나, 권율(權慄)₃은 적이 보는 앞에서 말을 씻기며 왜군을 조롱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식수가 풍족하다고 오인하여 퇴각하였다. 그러나 이때 말을 씻긴 것은

물이 아니라 쌀이었다.

독성산성이 공격을 받자 조선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타격조를 편성 운영해 수시로

야습을 감행하여 일본군을 교란시켰으며, 전라도 도사 최철견이 의병을 모집해

권율을 구원하기 위해 오자 일본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산성에서 철수했다. 이로써

경기도 일부가 수복되었고 명나라 원군이 오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₁ 이치전투(梨峙戰鬪)는 1592년 8월14일(음력 7월 8일) 전라도 진산군과 고산현 경계의 이치(배고개)에서 임시 도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黃進)이 이끄는 1천여 명의 조선군이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2천여 명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입작전을 저지했다.

₂ 용인전투(龍仁戰鬪)는 임진왜란 당시 1592년 7월13일(음력 6월 5일) 경기도 용인에서 이광과 윤선각 등이 이끄는 전라도 이광 4만, 전라도 방어사 곽영 2만, 충청도 윤선각 1만 5천의 약 7~8만의 남도근왕군이 겨우 1,600명의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전투이다.

₃ 권율(權慄; 1537.12.28.~1599.07.06.)은 조선 중기의 문신,군인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字)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또는 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영의정 권철의 아들이자 재상인 오성 이항복의 장인이다. 임진왜란의 조선군 장수로, 왜란 중반부터 종전까지 조선군을 이끌었다.

by 다음백과 中에서

 

 

 

 

 

 

 

 

 

3. 우리들의 여정(旅程) [마루샤브주차장/10시22분-연리지나무/10시39분-

양산봉/10시50분~11시-독산성 서문/11시53분-북문/12시02분-세마대/12시08분~11분-

보적사•동문/12시15분-메인주차장 및 쉼터/12시21분~26분-양산봉 입구삼거리/

12시33분-마루샤브주차장/12시52분: 여정시간 2시간30분]

 

 

 

 

 

 

 

 

 

 

 

 

 

 

 

                                            사진이 조금 많아서 3부로

 

'역사 배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의 현장 “독산성(禿山城)”-3  (0) 2018.10.28
역사의 현장 “독산성(禿山城)”-1  (0) 2018.10.27
융건릉 산책길  (0) 2018.09.13
탄금대를 한바퀴 돌고-2  (0) 2016.09.28
탄금대를 한바퀴 돌고-1  (0) 201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