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기 등

고모산성(姑母山城)과 진남교반(鎭南橋畔)

아름답지만~ 2019. 3. 15. 21:28

진남교반 주변은 1933년 대구일보사의 경북팔경 투표결과에 의해 제1경으로

선정된 곳이다. 이곳은 고모산성, 석현성, 고분군, 토끼비리, 성황당, 주막 등

역사적•시기적으로 다양하게 유적이 산재하는 곳이다.

고모산성은 할미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이르는 산성이다. 성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지형에 따라 높낮이를 맞추어 축조하였는데, 높은 곳은 11m, 낮은 곳은 1m로 폭이

2~3m이며 동쪽에 암문 1개가 남아있고 축성 방식에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은

협축식(夾築式)과 바깥쪽만을 쌓은 편축식(片築式) 축성법을 쓰고 있다.

 

 

 

석현성 줄기를 이어 고모산성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듯 하다.

아래, 위는 석현성의 모습이다.

 

아래, 위는 고모산성의 복구된 모습이다.

축조연대는 계립령로(鷄立嶺路)가 개통된 AD156년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한 2세기 말 경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후삼국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증개축을 거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한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증보문헌비고」,「징비록」,「조선왕조실록」등에 나타난다.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병이 몇 번의 정찰 후 지키는 군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지나갔다는 안타까운 기록이 전해져 온다. 또한 1896년

의병 전쟁 시 운강 이강년 선생이 이곳에서 격전을 벌였으며, 최근 6•25전쟁 때에도 중요한

방어 거점 지역이었다.

 

 

 

 

 

고모산성은 군사상, 교통상의 요충지에 위치해 숱한 전란의 역사를 함께 했으며,

이 지역의 중요성은 이 산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고부산성, 마고산성, 희양산성, 조령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연이어 있는 영남대로의 험로인 토끼비리(관갑천,串岬遷)와 함께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토끼비리는 오정산이 영강과 접하는 험한 벼랑의 바위를 깍아서 선반처럼 만든

길이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위치하며, 길 중에서는 최초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문경현 신천조에는 “관갑천(串岬遷)은 용연의

동쪽 벼랑을 말하며 토천(兎遷)이라고도 한다. 돌을 파서 만든 잔도가 구불구불

6,7리나 이어진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막혔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진군할 수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길 전체의 길이는 500m 정도이며 벼랑의 석회암 바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여 암석

일부를 파낸 곳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이 길을 지나다니던 선인들의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여행가로 알려진 권섭(1671~1759)의 손자인 권신웅(1728~1787)이 그린

「봉생천」에 당시 토끼비리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나타나 있다.

(by 안내글 인용)

 

 

 

 

 

1. 다녀온 날: 2019년 3월 6일

2. 돌아보기: 자를 뒤져 차를 진남휴게소에서 한바퀴 돌려 고모산성 주차장에 두고

성황당,주막거리,진남문을 거쳐 가파른 설벽을 따라 고모산성으로 올라 진남교반의

경치를 감상하고 토끼비리까지 갔다가 속이 불편해 데크길을 들어서지도 않고 되돌아

나와 주차장에서 화장실을 들린 후 차를 몰고 진남휴게소로 다시 들어서 점심을

먹은 후 오르는 길까지 본 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진남휴게소 식당의 화려한 치장이 들어온 손님을 압도한다.

 

3. 소회: 인구가 많지않던 그 옛날의 이런 외진 곳을 요충지로 잡았다는 건 요즘처럼

과학이 발전되어 주변 정황을 드론을 띄워 본 것도 아니면서 성을 쌓고 요새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게 놀라운 일이다. 고모산성과 관성이라는 석현성이 이어진 부분은

깔끔하게 복원되었으나 많은 부분이 복원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리 크지도 않은 성이

지역을 방어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고, 토끼비리는 입구에서 되돌린 아쉬 움의 500m가

미답으로 남았고, 진남교반의 여러 도로가 뒤엉킨 모습은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으나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카메라에 담긴 풍경은 깨끗지 못함이 아쉬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