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경주에 왔다고 하면 분황사는 필수코스였을 것이다. 그 시절 보다는 많은
유적들이 더해지기는 했어도 거의 제자리 걸음마이다. 황룡사지의 문화재 발굴도
성과가 미진한지 별로 진척된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노년층에 속하기에 무상
출입하므로 방문해 들어가 몇 군데 들리고 보광전에 조금의 보시를 한 후 되돌려 나와
당간지주를 둘러보고 황룡사지의 너른 터만을 둘러보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1. 다녀온 날: 2019년 03월 20일
2. 가는 길: 경주역•우체국 정류장에서 10번 시내버스를 탓다. 요금이 1,650원이라고
일행들이 수군수군하니 운전기사 왈 ‘좌석버스니까’ 그러게 모르면 말을 말아야지
괜히 한 소리 들었죠. 분황사 정류장에 내려 분황사로 향했다.
3. 둘러보기: 매표소를 통과하면 정면에 국보인 모전석탑이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상이, 네 면의 벽에는 감실을 두고 있는 탑이다.
입구 좌측에는 대종각이 있으며, 모전석탑 뒤 보광전과 사이에 화쟁국사비부와 석정이
있으며 보광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금빛을 강하게 발산하며 입구를 바라보고 계시다.
보광전의 후면 담 가까이에 대원심 보살 사리탑이 보통은 석등으로 지나치기 쉽게
마애불과 이웃하고 있다. 담 밑으로 석물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부러져 있고
낡은 비석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밖으로 나와 황룡사지를 바라보며 당간지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사방에서 당간지주의
모습과 안내글을 담고 다시 한번 황룡사지를 담으면서 상당히 넓은 터를 차지하면서도
유물을 찾지 못한채 빈터로 남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4. 소회: 다음 행선지인 탈해왕릉을 가기 위해서는 걷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얼마나 경기가 안좋으면 콜택시 부르니 택시(각 3,000원)가 곧바로 달려온다. 관광객은
편리해 좋지만 벌어 먹는 사람은 고역일 것이다. 게다가 2015년 지진의 여파는 학생들의
단체관광이 줄어 경주의 경기를 더욱 나쁘게 하여 아쉬운 마음을 금할길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모전석탑도 감실 문의 인왕상도, 돌사자상도 풍화작용에 의해 어렴풋이
미루어 짐작할 때가 머지 않았다는 심정이다. 그러기에 2016 년 1월 아내와 경주에와
무열왕릉 앞 주차장에서 OBS와 인터뷰를 한 적도 있지 않은가? 너무 안이함도 위험하겠지만
호들갑스러움도 국민성 속에 존재하니 걱정스럽다. 잘 되는 일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안된 일에 비난하고 꼬투리 잡는 일 에 능숙해서야 되겠는가.
황룡사지 (사적 제6호)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574년,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었다.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고,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바람의 9층 목탑을 짓게 되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
(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2부를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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