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성지순례(聖地巡禮; 2023.04.26.~05.05)-12

아름답지만~ 2023. 6. 12. 17:22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순례여행은 이제 오밀조밀한 성지를 다니다가 보니

기록의 한계로 헷갈리는 곳이 자주 나타나 가급적 실수를 줄이고자 쓰다가

인터넷 뒤져서 정리해야 되겠다. 참으로 나에게는 난해한 곳들이다.

올리브 산(Jebel AZ-Zeitun; Mt. of Olives) -54-

올리브산 또는 감람산(橄欖山)은 동부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오른쪽 산능선이다. 예루살렘 동쪽에 있으며 해발 815m이며 고대부터 감람나무가 무성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도 감람산이 되었다.

기드론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 옛시가 성벽과 대치하고 있는 산으로, 중앙남팔레스타인에서 남북으로 뻗은 산맥의 일부이다. 산맥은 정상이 3(전망산 826m, 올리브산 818m, 멸망산 747m)이고, 동쪽은 요르단 계곡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은 기드론 골짜기 쪽으로 경사져 있다. 예수 당시는 산 전체가 올리브로 덮여 있었는데, 현재는 서쪽 산기슭에 있는 예수 수난의 땅인 겟세마네 동산을 제외하고는 거의 올리브를 볼 수 없다. 멸망산에는 아브라함 수도원이 있으며, 올리브산 동쪽으로는 유대 광야가 시작된다. (by 위키백과 글에서)

벳파게(Bethphage) 기념성당 -54-

벳파게는 설익은 무화과의 집의 뜻을 가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은 예루살렘 성지를 맡고 있는 프란치스코회를 위하여 1883년에 지어졌다.

십자군 시대에 옛 경당은 4세기에 지어진 성당 유적지 위에 세워졌는데, 라자로가 죽은 뒤 예수님께서 마르타를 방문하신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성당이었다. 그리고 메시아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리라고 예언한 즈카르야 예언자에게 봉헌된 성당이었다. 12세기 십자군 시대의 옛 경당 유적지 위에 지어졌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오시는 성화 등

미사를 드리고 나와

버스 타러 가면서 이스라엘 나팔꽃 

예수승천 기념경당, 예수승천 기념건물, 예루살렘의 올리브산(감람산) 정상에 위치한 모스크로 예수 승천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383년 귀족출신 '포이메니아'가 소성당으로 봉헌하였고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후, 675~6년에 재건되었으며, 1009년 하킴에 의해 또다시 파괴되었다. 1198년 살라딘이 모스크로 개조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예수를 중요한 예언자와 마지막 심판자로 공경하고 있다.

(by 위키백과 인용)

예수님의 승천을 상징하여 천장을 만들지 않았었고 그후 무슬림들이 이 교회 천장에 둥근 지붕을 만들어 씌우고

이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변경시켜 버렸습니다. 무슬림들도 예수님을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보아 예수님의 승천을

인정해 이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한 것입니다.

예수승천 경당에서는 1년에 하루, 즉 주님 승천 대축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미사 전례를 거행하도록 허락한다.

경당 안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딛고 오르셨다는 바위(Footprint stone in Dome of Ascenson)가 남아 있다.

비잔틴 시대 교회의 흔적들

각국의 제단,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곱틱, 아르메니안의 제단들.

벽에 줄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고 이 고리에 줄을 묶고 그늘을 만들 수 있어 미사 제례시

차광막을 설치 운영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문 성당(빠데르 노스떼르-Pater noster)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치셨고,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셨던

동굴 위에 콘스탄티우스 대제가 기념교회를 세웠으나 614년 페르시아인에 의한 파괴와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우고 후일 이슬람 교인에 의해 파괴됩니다.

현재의 성전은 1875년 프랑스 카톨릭의 가르멜 수녀원과 함께 건립되었다. 교회 안 회랑 벽에는 세계 62개국 

언어로 '주님의 기도'가 쓰여 있으며 한국어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 기도문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카톨릭 교회의 '주님의 기도문'이고 또다른 하나는 개신교회 '주님의 기도문'이다.

이 성전을 '빠데르 노스떼르'(Pater Noster)라 하는데 빠데르 노스떼르는 "우리 아버지"에 해당하는

주님의 기도 첫 글자이다. 

추위를 피하였었다는 굴.

프랑스 바씨의 아울렐리아 공주의 무덤

도보로 이동하면서 유대인 묘지를 지난다.

올리브산에서 본 예루살렘 쪽 황금색 돔 모스크 등을 둘러보고, 올리브산은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유다인에게도 성지이다. 그 이유는 즈카르야의 예언대로 마지막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 편

동쪽에 있는 올리브산에 오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

부활을 믿으며 이 산에 묻혔고, 지금도 묻히길 원하고 있다.

눈물성당을 가면서 쥐엄나무[주엽나무(비각수;卑角樹)는 실거리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쥐엄나무라고도 하며 녹색의 꽃이 피고, 꽃말은 '소식'이다. 어린 잎은 식용하며 열매는

약재로 쓴다. 나무의 크기는 약 20m이다.]와 무덤들이다.

예수님 눈물교회(Dominus Flevit Church)
올리브 산에서 게세마니 동산으로 내려오는 중간지점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곳에
세워진 교회이다
. 1955년 건축한 프란치스코회 교회이다. (by 위키백과 글에서)

디카란 놈이 역광을 너무 잘 안다. 위 인물 두 장은 얼굴이 잘 안보인다.

아래 두 장은 핸드폰 사진인데 뒤 경치가 사라졌다. 두 번째 사진 황금색 돔이

보이는 사진은 그리스 정교회의 성당이다.

겟세마니(Gethsemani; 기름 짜는 기계를 말함)

겟세마니 교회(the Church of Gethsemane)
감람산 서쪽 기슭에는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겟세마네 교회는 예수가 로마군에게 잡히시기 전날 밤 무릎을 꿇고 기도한 곳이다. 이곳에 세워진 겟세마네 교회는 AD375~395년에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건축된 교회였으나 614년 페르시아 침입시 파괴되었으며 8세기에 지진으로 또다시 파괴되었다. 현재의 교회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가능한 한 옛 모습을 재현코자 했기 때문에 4세기 종반의 바실리카 모양이나 비잔틴 시대의 모양과 벽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한편 이 교회는 여러 나라에서 보내온 헌금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만국민의 교회라고도 불린다.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했던 바위가 제대 앞에 자리하고 있다. 교회 입구 네 기둥은 4복음서 저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한다.

겟세마니는 예루살렘의 동쪽, 기드론 계곡을 눈앞에 둔, 올리브산(감람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동산으로서 예수는 가끔 제자들과 이 동산에 올라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특히 겟세마니는 예수가 죽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제자들과 함께 올라 슬픔과 고뇌에 찬 최후의 기도를 드린 동산으로, 그리고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의 체포가 이루어진 장소이다.

겟세마네는 개신교식 표기이고 카톨릭에서는 겟세마니’, 공통번역 성서에는 게쎄마니라는 명칭을 쓴다.

(by 위키백과 글에서)

제대 앞 예수께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했던 바위, 겟세마니 교회의 정면 네 기둥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교회의 소경당인가 종파가 다른 석상은 모를 일이다. 바로 위는 본 듯한 그리스도 표시물이다.

마리아 무덤교회(그리스 정교회 소유)

마리아 무덤 성전                                                                                                                                                                                                                   은 겟세마니 동산의 "사도들의 동굴"과 함께 4세기 말경까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의해 보존된 마지막 보루였다.

마리아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 이 자리에 422~458년경 기념성당이 세워졌다.

그 후 6세기 무덤 성당 위에 두 번째 성전을 지었으나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

이 성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십자군 시대인 1130년경 분도수도회에서

크게 확장해 재건하였으나 1187년 살라딘이 마리아의 무덤이 있는 지하 성당만을

남겨두고 모두 파괴하였다.

이슬람 교도들은 마리아를 "예언자(예수)의 어머니"로공경했기에 지하 성당은 

파괴하지 않고 경배했다고 한다. 그후 1363년경 부터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지하성당을 관리했으나 1757년 그리스 정교회에게 관리권을 빼았겼고,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 무덤 성당을 나와 11시48분 버스로 11시59분 내려 간 식당 City Restaurant

점심 후의 글과 사진은 13편에서 이어 갑니다.